김시현시우 가족의 유럽여행

점심을 여유있게 먹고 나니 파리 패션의 중심지이자 쇼핑의 대명사인 샹젤리제 거리가 걷고 싶어졌다.

파리의 경우 지하철이 잘 갖춰져서 어느 곳이든 지하철로 쉽게 이동할 수 있고
복잡한 버스 노선도에 비해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지하철 노선도가 있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고 싶기도 하고 또 지하보다는 지상으로 이동하면서

주변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마침 점심을 먹은 레스토랑 바로 앞 정류장에 개선문으로 가는 버스노선이 있었다.
아마 여행자들은 적절한 교통수단을 찾고, 정류장을 찾고, 표를 사는 것이 복잡하기 때문에 파리비지트처럼

이 수단, 저 수단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 나라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모든 교통수단을 통합한 정기권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버스를 타고 얼마 가지 않으니 바로 개선문이 나온다.

사실 파리는 애매한 크기다. 로마는 작아서 좀 많이 걷는다고 생각하면 어디든 걸어다닐 수 있다.
서울은 사실 걸어 다디기엔 너무 크다. 강남에서 신촌까지 걸어갈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파리는 로마보다는 크지만 서울보다는 작다.
특히, 구시가는 작은 편인데 그렇다고 다 걸어 다니기에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된다.

따라서 계획을 세울 때부터 걸어 다닐 거리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거리를 대략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목적지는 개선문이 아니고 또 개선문은 따로 뮤지엄패스를 이용해서 전망대까지 올라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그냥 개선문의 조망이 좋은 곳에서 사진만 찍었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 온 듯한 연인들이 사진을 찍어 달라기에 찍어줬더니
우리 가족도 개선문을 배경으로 한 장 찍어준다고 한다.

개선문에서 콩코드 광장까지 넑게 직선으로 뚫린 길이 바로 샹젤리제 거리이다.

98년만 하더라도 세상의 온갖 명품과 최고의 매장들이 이 곳에 즐비하게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14년이 지난 2012년에 와 보니 우리 나라랑 별반 다르지 않다.

거의 다 우리 나라에도 있는 브랜드들이고 시설도 우리 나라 매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우리 나라에서는 수명을 다하고 철수하거나 명성이 약화된 브랜드들이

아직 이곳에서는 사랑받고 있구나 싶은 것들이 있었다.

그만큼 우리 나라의 국력이 예전보다 발전한 것이리라.

원래 계획은 샹젤리제 거리를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는데 중간에 웬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다.

경찰차와 TV중계차가 있는 것을 보니 이 곳 연예인이 있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인파를 뚫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중간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껴있다가

간신히 뒤로 돌아나올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끼여 있었기 때문인지 아이들의 체력이 급작스럽게 소진된 것 같다.

다행히 파리의 지하철역은 역 간격이 멀지 않아서 바로 지하철 1호선 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1호선을 타고 Concord역에서 내리니 바로 튈르리정원 (Jardin des Tuileries) 옆문이다.

콩코드광장부터 루브르 궁전까지 이어지는 큰 정원이고 콩코드쪽으로 왼편에 오랑주리미술관이

오른편에 쥬드폼국립미술관이 있다.

아주 많은 거리를 걸은 것은 아니지만 아침부터 나와서 하루종일 밖에 있는 것도 피곤하고

샹젤리제에서 사람들 틈에서 치인 것도 피곤해서 튈르리정원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나는 내일부터 쓰게 될 뮤지엄패스를 미리 사두려고

쥬드폼국립미술관으로 갔다.

입구에 보니 관광객은 거의 없고 현지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만 있다.

경비원 아저씨에게 뮤지엄 패스를 사려고 한다고 하니 영어를 못 알아듣고 기다려서

매표소에 물어보라고 하는 것 같다. 매표소에 물어보니 쥬드폼국립미술관은

뮤지엄패스의 대상이 아니고 뮤지엄패스를 팔지도 않는다고 한다.

나중에 돌아와서 알아보니 루브르궁에 부속된 미술관의 하나로 건물 이름을 따서 이름지어졌고

인상파 명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데 인상파이후 근대작품들이 파리국립근대미술관으로 옮겨지며

최근에는 관광객이 많이 찾지는 않는다고 한다.

쥬드폼에서 뮤지엄패스를 구하지 못했으니 반대편 오랑주리에 가서 구입해야하는데 좀 귀찮다.

혼자 왔다갔다 하기도 그렇고 그냥 내일 사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 때문에 개선문에서 뮤지엄패스를 사려다가 소매치기를 만났지만....

역시 그 때 귀찮아하지 않고 오랑주리에서 예매했거나 또는 출국하기 전에 서둘러서 사갔어야 편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오벨리스크가 있는 콩코드 광장으로 갔다.

콩코드광장은 프랑스혁명 때 단두대가 설치되어 1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곳에서 목숨을 잃은 무시무시한 곳이다.

이 곳부터 개선문까지 쭉 뻗은 샹젤리제 거리가 시원스럽게 보이지만

이런 비극의 이야기를 들으면 오싹한 분위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콩코드 광장 중앙에 황금빛 머리를 가진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유물이다.

뉴욕에 있는 오벨리스크나 파리에 있는 오벨리스크나 모두 이집트의 유물인데 정작 이집트가 아닌 다른 나라에 있다.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의미가 있고 만들어진 갯수도 많은 모양이다.

현재 콩코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총독이 루이 필리프 왕에게

3200년 된 룩소르의 오벨리스크를 증정하면서 이 곳에 옮겨져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곳에 올 때마다 세계 강대국으로 많은 문화 유산을 빼앗긴 이집트를 떠올린다.

우리 나라도 서구 열강의 침입과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들이 해체되어

일본등 해외로 팔려 갔을까?

파리에도 병인양요 때 강탈해간 우리 문화재가 많다는 점을 떠올리면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낀다.